진주지역 인근(산청, 함양, 사천, 하동 등)에는 옛날부터 양잠이 발달하였으며, 구한말 실크 산업은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집단화되어 생산되고 있었다. 이곳은 양잠농가가 많이 있었고, 150여 가구 전 주민이 수족기(手足幾)를 갖춰놓고 실크 제품을 짠 것으로 알려져 있으다. 이는 순수 가내공업 형태의 전형적인 농가 부업으로서의 직물을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진주지역에서 공장형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쯤으로 추정된다. 1912년에 발간된 「慶南晋州案內」에는 진주지방은 토질과 기후가 좋아서 양잠의 적지로 꼽히고 있다고 하였고, 1913년에 발간된「補晋州案內」에는 기계가 불완전하여 비단의 품질이 낮기 때문에 일본에서 직기를 들여와 그 기술을 배운다. 원료가 풍부한 이곳의 양잠은 미곡에 버금가는 재원이 되고 있다고 적고 있어 1912년 전후부터 기계를 이용하여 실크 직물을 생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당시 주로 사용하던 직기는 手足幾로 일본에서 역직기를 들여와 실크 산업의 근대화 기초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진주실크는 발전을 거듭하여 1970년대까지 해외 수출과 내수 시장을 점유하면서 최대의 호황을 맞았으며, 특히 이 시기에는 「진주뉴똥」이라는 고유상표로 생산되어 전국에 진주실크를 알리게 되었다.
현재 진주시는 세계 5대 실크 명산지에 속한다. 1912년 현대 섬유공예기술과 생산설비가 결합하여 대량생산체제를 갖추었고, 이후 100년간 한국 전체 실크생산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진주는 실크산업 클러스터를 가지고 있으며, 총 54개의 기업에 약 500명의 전문인력이 종사하고 있다.
진주실크박람회는 매년(2004~2018) 관련업체를 대상으로 진주실크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참신한 실크디자인을 공모하여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